[한글] The Bible and same sex relationships: A review article Tim Kell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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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아티클은 다음 두 권의 책에 대한 Tim Keller 목사님의 리뷰글의 번역본 입니다.

※현재 크게 이슈가 되는 주제이고 교회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때문에 Tim Keller 목사님과 같은 지성적인 변증 설교가가 전하는 본 메세지는 상당히 의미있다고 생각하여 본 글을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번역에 관해서 전문적인 훈련이나 교육을 받은적이 없기에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거든 양해 부탁리며 문맥의 흐름상 의역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원문은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동성애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작년 가을, 나는 Wesley Hill 과 Sam Allberry 가 쓴 역사적 기독교 관점을 다룬 책에 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Hill 은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 그러므로 동성애 행위는 모든 인간,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창조주의 뜻에 위배되는 행위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다른 견해를 갖는 책들은 성경이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지지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1년동안 나 (그리고 Redeemer 교회의 목회자들) 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응답을 해줄 것을 정기적으로 요청 받았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취한 책들 중 가장 많이 읽히는 두 권의 책은 바로 Matthew Vines와 Ken Wilson 의 책입니다.

Books
Matthew Vines와 Ken Wilson 의 책

오늘 날 치열하게 다뤄지는 주제이기에, 이 두 권의 책에 대한 리뷰가 평소보다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본 저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제 입장에서, 너무 짧은 리뷰는 형식적이거나 무시하는 듯 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 책들과 다른 책들에 대해서 6가지의 논점을 살펴보았습니다.

Knowing gay people personally. 동성애자들을 개인적으로 아는  

Vines와 Wilson은 성경이 동성애를 정죄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알아가며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동성애자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성(性)에 끌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현명한 동성애자들을 알게 된 후 ‘동성애는 죄’라는 오래된 믿음을 버리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들의 이전 견해가 불완전 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본질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신학적 또는 윤리적 원칙이나 역사적,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이 아닌 것 입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쁜 죄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 입니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신학적으로 죄에 대해서 얕은 지식을 가진 것 입니다.) 이러한 편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을 부정하는 것이 ‘성경이 동성애를 결코 금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을 보기 위해서는 말씀을 살펴 봐야 합니다.

Vines와 Wilson은 역사적인 연구자료들이 성경이 모든 동성 관계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 탐욕, 매춘, 강간 같은 착취적 관계만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바울 및 성경 필자들은 선천적 동성애자 성향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며, 착취적인 동성애 관행에 대해서만 알았기 때문에 상호간 사랑하는 동성애 관계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980년대 John Boswell 과 Robin Scroggs 에 의해 처음 주장된 내용이고 Vines와 Wilson은 이 내용을 다시 채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1980년대 이후의 세속적, 진보적 그리고 보수적인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그 주장을 거부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 두가지 예시가 있습니다.

Symposium
플라토의 ‘Symposium’

Bernadette Brooten과 William Loader는 고대에 동성애 성향이 알려졌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Aristophanes의 연설 중 ‘Plato’s Symposium’은 제우스가 어떻게 인간을 반으로 나누고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만드는지, 이들이 서로의 “잃어버린 반쪽” (이성애자는 다른 성(性)을, 동성애자는 같은 성(性)을) 을 찾는지 이야기 합니다. Aristophanes 가 이 신화를 문자 그대로 믿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어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성보다는 동성에 끌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Vines 의 주장과는 달리, 고대인들은 상호적이며 착취적이지 않은 동성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 장에서 바울은 동성애를 “서로”(27절) 열정적으로 불타는 남자들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상호적인 것을 말하며 강간이나 매춘, 남색(남성/소년 관계)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관습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용어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성과 여성 모두 같은 성별 간 사이의 모든 성적 관계를 명확하게 비난합니다. 바울은 상호 동성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고, 고대인들은 동성애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동성 간 섹스를 수용 가능한 것으로 면제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Loader, Making Sense of Sex, p.137)

나는 독자들이 이 주제에 익숙해지길 권하며 William Loader의 “Sexuality in the New Testament (2010)” 이나 “The New Testament on Sexuality (2012) 같은 킨들(Kindle)책을 추천합니다. Loader 는 성(性)에 대한 고대와 성경적 견해에 관해 잘 알려진 전문가이며 생애에 5권의 장편과 2 권의 단편 책들을 썼습니다. Loader 자신은 동성애 관계를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다만 – 정당하고 확실하게 – 성경이 그들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Re-categorizing same sex relations. 동성애 관계 재분류

이 책을 포함하여 유사한 책들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주제는 재분류 입니다. 과거에 동성애는 모든 기독교 교회와 신학에서 죄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동성애는 노예제도나 인종차별과 같은 주제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Vines 는 성경이 노예제도를 지지했으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형태의 노예제도가 성경에 의해 묵인되었다고 믿었으나 지금은 모든 노예제도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변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이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지지하기 위해 성경을 해석한 것처럼, 동성애에 관한 성경적 해석도 시대가 흐를수록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Mark Noll (America ‘s God, 2005 and the Civil War as a Theological Crisis, 2006) 과 같은 역사가들은 19세기에 일부 사람들이 가진 성경이 인종 기반의 노예제도를 지지한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캐나다와 영국에 있는 대부분의 기독교(그리고 미국 북부에 있는 많은 기독교도) 들은 이런 주장이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이라며 비난했습니다. Rodney Stark (For the Glory of God, 2003) 역시 가톨릭 교회가 일찍이 아프리카 노예 무역에 대항했다고 말합니다. David L. Chappell 의 인권운동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A Stone of Hope, 2003). David 는 50년대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인종적 우월성과 인종차별을 성경에 근거하여 정당화 시키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인종차별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도 성경에서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노예제도와 동성애에 대한 관점들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최근까지 모든 교회와 신학자들은 만장일치로 성경이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이 성경의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한 협의체나 교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David Chappell 은 미국 남부에서 조차 성경에서 인종차별을 지지한다는 주장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안에 성경에서 말하는 성(性)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변호할 사람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노예제도에 대한 시각과 동성애를 비난하는 시각을 동일시하며 변화된 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무효화 시킵니다.

Wilson 은 교회에서 이혼과 재혼, 전쟁에 대한 참여, 체외 수정과 같은 다른 형태의 논쟁을 제시하며 동성애도 이와 같은 재분류에 속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목회와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침례, 타고난 재능 등의 문제를 논할 때 재분류의 목록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각 기 다른 선한 그리스도인들’ 에 대한 논의입니다. 우리는 이혼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견해가 정통적 기독교 신앙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Wilson, Vines 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제 동성애를 이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위와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이 있기에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또한 역사는 동성애가 재분류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다는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Wilson의 재분류 목록들 중 다른 항목들은 교회 내에 길고 오래된 역사가 있었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하는 부분들이 교회에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주, 아주, 최근까지 모든 세기, 문화, 정교회, 카톨릭, 개신교 등에 상관없이 교회는 만장일치로 동성애를 죄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동성애는 이러한 목록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껏 어떠한 교회, 신학자 또는 기독교 사상가나 운동이 동성애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것입니다. 남북전쟁 중에 영국 장로회 신학 학자들은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미국 남부의 동료 신학자들이 문화적 콩깍지에 씌여 성경을 읽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위해서 성경을 읽으며 원하는 증거를 찾고자 했고 – 어떻게든 그 증거를 찾았습니다. 만약 다양한 문화와 시간에 걸쳐 성경을 읽은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한 지지를 발견한 적이 없다면 오늘 날 많은 이들이 새로운 문화적 시각을 통해 매우 의도적으로 그들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성경에서 찾고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관점은 무엇입니까? 예전보다 지금 시대에 동성애가 사람들에게 더욱 받아들여 지는 것은 사람들이 현대 서구 문화가 말하는 삶을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해” 라는 주장을 강요하며 성적인 욕구는 개인의 정체성이자 이것을 억누르는 것은 정신적 손상을 입히며 모든 개인들은 자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압박합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Robert Bellah 와 Charles Taylor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잘 분석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자명하지 않은 것들의 본질은 신념이며 이것은 어떠한 종교적 믿음보다도 경험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신념들은 또한 부적합하며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Vines 와 Wilson은 이러한 문화적 이야기들을 상당부분 사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체성과 자유에 대한 믿음의 가정이 명확하게 성경을 읽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진 견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이지만 결코 확인되거나 논의되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Revising biblical authority. 변질된 성경적 권위

Vines와 Wilson은 성경이 가진 높은 권리를 인정하고 진리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성경이 동성 관계를 잘못된 것이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Vines는 레위기 법이 동성애를 금지하지만(레위기 18:22) 동시에 조개류를 먹는 것도 금지(레위기 11:9-12) 한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조개류 섭취를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는데 동성애에 대한 생각도 왜 바뀌면 안되냐고 주장합니다.

1
레위기 18:22 (우리말성경)
3
히브리서 10:16 (우리말성경)

여기서 Vines는 모세의 제사 의식 절차에 대한 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었고 더 이상 구속력이 없으나 구약의 도덕적인 율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는 신약성경의 내용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10장 16절은 성령이 그리스도 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겼다고 말씀하고 있기에 – 모세의 율법 중 제사의식에 관한 법이 유효하지 않더라도 도덕적인 율법들은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신약 시대 이후로 모든 교회에서 인정되어져 왔습니다.

Vines 가 제사의식과 도덕적인 율법들에 대한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단순히 구약성경에 대한 대안적인 해석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적인 성경의 권위를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조개류를 먹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라고 하며 이것을 동성애에 적용할 때 (그런데 레위기 19:18은 Golden rule 로 여전히 적용된다고 가정함), 성경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권한은 성경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이 정의하게 하며 궁극적으로 성경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입니다.

전통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이 따르지 않아도 될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우리의 최종 권위라면, 오직 말씀만이 그것들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금지는 신약성경에 다시 언급되어 있으나 (로마서 1장, 고린도전서 6장, 고린도전서 1장), 정결법과 제사의식에 관한 부분은 더 이상 효력을 갖지 않는다고 예수님 자신과 (마가복음 7장) 나머지 신약성경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Vines는 성경권위에 대한 믿음을 유지한다고 말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들은 실제로 그가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기독교 신학과 삶에 큰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Being on the wrong side of history.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다.

Vines보다 Wilson의 책에서 더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역사가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동성애를 거부하는 시도는 불가피한 역사적인 흐름에 도전하는 헛된 시도라는 주장입니다. Wilson은 역사의 “복잡한 세력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노예제도에 대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줬으며 지금도 동성애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Charles Taylor 는 이런 불가피한 역사적 진보에 대한 개념이 인간 본성과 이성에 대한 계몽주의적 낙관론에서 어떻게 파생되었는지 설명합니다. Vines와 Wilson은 성경 외적인 배경지식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면 여론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어떠한 시점에서 항상 모든 문화에 불쾌감을 줄 것입니다.

게다가, 당신이 Eric Kaufmann 의 “Shall the Religious Inherit the Earth?” (2010) 이나 최신 지정학 연구자료들을 읽는다면 세상이 필연적으로 더욱 세속적으로 변해가지 않고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비(非)종교적이고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함을 강조하는 인구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으며 보수적인 종교를 믿는 인구수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본다면 역사가 더욱 세속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Missing the biblical vision. 성경적 비전의 누락

독자로서, 저에게 가장 슬펐던 점은, 성경과 성(性)에 관한 두 책들에서 Vines와 Wilson은 성경이 제시하는 영광스럽고 높은 성(性)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성경의 부정적인 부분과 동성애 행위에 대한 금지에 집중한 것입니다. 두 저자는 성경이 결혼관계에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요구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그리고 하나님과 인류 – 처럼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으로 쌍을 이루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하고 서로 다른 피조물들이 연합하여 그들의 관계를 통해 더 역동적으로 많은 생명과 아름다움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 위대한 창조의 일부인 것 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어 연합하는 것은, N.T. Wright 가 말하듯이, 이러한 창조의 절정인 것입니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상호교환 불가한 독특한 영광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생 결혼 언약 안에서 이러한 힘과 영광을 다룰 수 있는 방법으로 성(性)을 창조하셨습니다.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만남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강렬하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듬어지고, 배우며, 함께 일합니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가 여러 문화적 부분의 다양성을 지지하지만, 모든 다양성의 궁극점인 남녀간의 결혼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일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이 말하는 성(性)적인 금지법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는 다양한 관점의 필요성과 성(性)을 구분하는 인간관계들을 영예롭게 하지 않습니다. 동성애는 서로의 배우자에게 이러한 것들을 제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서로 다른 성별의 부모가 각 각의 성별이 제공해줄 수 있는 깊은 유대감 또한 제공할 수 없습니다.

본 리뷰는 두 저자들에게 일관성을 유지하며 정중하고 격조 있게 전달되기에는 너무 짧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제에 관해 논할 때 정중함과 사랑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자들이 분노와 비꼬는 흐름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들은 좋은 모범이 되고 있으나, 그들의 주요 요점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 리뷰에서는 그러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뤄야만 했습니다. 이 리뷰가 정중하게 이뤄졌기를 바랍니다.

2 comments

    1. 맞습니다^^ ‘남녀의 결합이 모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들의 궁극점’이라 표현도 그렇구요. 동성애나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말씀에 근거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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