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결혼 – 헌신과 우선순위 by Tim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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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iage as Commitment and Priority by Timothy Keller

Dates: Sep 1, 1991
Origina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JvAbHOfLIyY

※번역에 관해서 전문적인 훈련이나 교육을 받은적이 없기에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거든 양해 부탁 드리며 문맥의 흐름상 의역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오늘 밤 설교의 제목은 ‘결혼, 그 세번째’ 입니다. 이제 여름이 왔기 때문에 극장에 여러가지 시리즈물들이 많이 나오죠? ‘사탄의 인형 3편’ 이라던지, ‘터미네이터 2’와 ‘록키85’가 있고, 우리는 ‘결혼, 그 세번째’를 시작합니다(웃음). 여러분들이 좋아할거라 생각했어요.

(1991년 9월1일 예배 설교이기 때문에 그 해에 나온 영화들이 설교 예시로 사용되었음_옮긴이)

함께 에베소서 5장을 펴볼까요? 저녁예배에 오시는 분들은 이 설교가 18년 전 즈음에 시작한 시리즈 설교 중 일부라는 것을 아실텐데요, 우리는 에베소서를 매우 천천히 읽어오며 이제 가장 길고, 고전적인 내용에 도착했습니다. 본문은 성경 전체에서도 결혼에 관해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부터 33절까지 읽겠습니다 :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5:22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순종하듯 하십시오.
5:23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몸의 구주십니다.
5:24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5:25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심같이 하십시오.
5:26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말씀을 통해 교회를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해서 거룩하게 하시고
5:27 티나 주름이나 다른 지저분한 것들이 없이 교회를 자기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서도록 해서 오직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5:29 자기의 육체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먹이고 보살피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하시듯 합니다.
5:30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해 둘이 한 육체가 될 것이다.”
5:32 이 비밀이 큽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5:33 그러나 여러분도 각자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사랑하듯 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십시오.

우리말 성경

본문에 대해서 나누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이전에 어떤 내용을 나눴는지 먼저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간단히 요약해드릴게요. 우리는 이 구절에서 다음의 여섯가지 주제로 결혼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

이 여섯가지 주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결혼의 힘’
  2. ‘결혼의 정의’
  3. ‘결혼의 우선순위’
  4. ‘결혼의 목적’
  5. ‘결혼의 구조’
  6. ‘결혼의 신비’

지난 주에도 말씀 드렸듯이, 이 모든 것들을 하나 씩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모든 부분을 조금씩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처음 두 개만 보았고 오늘은 세 번째를 함께 보고 싶습니다. 처음 두 가지는 ‘결혼의 힘’‘결혼의 정의’ 였습니다.

첫 번째, ‘결혼의 힘’

‘결혼의 힘’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결혼의 권세’에 대해서는 21절에 있습니다.

21절은 실제로 우리가 5장 18절에 나오는 성령 충만에 대한 구절 – 또한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방탕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십시오. – 에서 결혼의 의미에 대한 구절과 직접 연결됩니다. 좋은 결혼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어떠한 결과가 있다면 원인도 있게 마련입니다. 좋은 결혼생활의 원인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21절은, 영이 충만할 때 이타심, 곧 남에게 ‘복종’(Submitting)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의존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복종하는 마음, 기꺼이 다른 사람을 섬기려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모든 건강한 결혼 생활의 기초입니다.

섬김(Servant-hood)의 영(Spirit)이 있습니다. 섬김의 마음은 모든 품위 있는 결혼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이 다른 모든 것보다 먼저 나옵니다. 섬김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섬김의 마음은 사실 설명하기 모호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세 가지 중요한 점을 말씀드릴게요. 이것이 없다면 결혼 생활을 잘 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세 가지는 실제로 ‘섬김의 마음’을 이루는 것들입니다. 자동차 엔진과 오일을 상상해보세요. 만약 오일없이 시동을 건다면, 윤활성이 떨어져 시동 할 때의 마찰과 장력이 빠르게 과열되어 엔진을 파손시키겠지요. 이 경우 완충 역할을 해주는 무엇인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마찰이 생기는 경우 모든 움직임들에 영향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이런 마찰과 움직임들을 흡수하는 것이 바로 ‘섬김의 마음’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세 가지 요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 첫번째, 상처를 받지 않고 비판을 들을 수 있는 능력 – 바로 자기방어적 태도의 부재입니다.
  • 두번째 – 상처를 주지 않으며 비판을 할 수 있는 능력.
  • 세번째 – 사람들을 용서한 뒤, 분노를 남기지 않는 능력, 다시 말해, 사람을 용서한 뒤에 진정으로 놓아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가 정의하는 ‘종의 마음 입니다.

비판을 할 때, 비판을 받을 때, 용서할 때 내 자신을 내려놓는 능력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마음을 비추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 예수님 당신이 매우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열 여섯 살 소녀와 이야기 한 것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 소녀는 데이트 상대가 없었어요. 아무도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죠,

“저는 크리스천 입니다. 저는 제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가 나를 위해 자신을 주셨고, 그가 내 안에 어떻게 사시는지 압니다. 저는 제가 그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요. 그분이 제 말을 듣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요. 또한 저를 위로하고 돌보아 주실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제가 데이트를 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죠?”

자, 그녀는 그렇게 유창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지적인 표현으로 “예수님께서 날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지만 지금 저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구요!” 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은 그녀를 설레게 하지 못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실제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현실적으로, 만왕의 왕께서 “너는 내 것이고 나는 너를 위해 영원히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실 때, 그 누가 열 여섯 살의 코흘리개 소년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이나 쓸까요?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만왕의 왕보다 여드름투성이의 열 여섯 살짜리 남자 아이를 선택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런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성령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올바른 방향을 향하는 것입니다. 현실과 접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내 전부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은 실제로 모든 인간이 종교적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모든 사람의 삶에 체계적인 종교적 구조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내면 깊은 곳에서 행동적인 성취를 통해 열반에 이르거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이걸 이룬다면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거야” 라고 말합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던 주제이지요.

로마서 1장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무언가, 어떤 형태의 종교던지, 그들이 숭배하는 무엇이던지, ‘그것을 얻는다면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당신의 성취도, 성공도, 관계도, 사랑도, 그 어떤 것도 당신을 만족 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돌아가셨고 그가 당신을 위해 하신 일을 깨달을 때,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쉼을 얻을 수 있고, 안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을 볼 때, 여러분이 성령충만할 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21절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 문자적으로 ‘그리스도를 두려워함’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삶에서 매우 실제적이기 때문에 복종(Submitting)할 수 있고, 이타적인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결혼생활 혹은 다른 어떠한 상황들에서 상처 받지 않으며 상대방의 비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나의 제사장, 친구, 나의 왕, 형제가 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면 비판을 받을 때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걸까요?

그럼 상처를 주지 않으며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걸까요?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버리고 복음만 의지해야 합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은 오랫동안 나를 참아 주셨고 계속해서 진리를 보여주셨지만, 나는 계속해서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그는 나를 달래고 인내하며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습니까?”

이럴 경우, “좋은 생각들이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당신에게 계속 소리를 지를 것이고,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네요” 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이미지 출처 : flyingcalls.com)

자, 처음에 당신의 삶을 다시 점검할 때, 삶을 복음 안에서 살아가고자 할 때, 관계를 가질 때에는 종의 마음(Servant-Hood)과 복음이 기준 되는 요소들을 가지고 위에 언급한 것 내용들처럼 자기 내면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당신이 원할 때 바로 작동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에 관련된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설교 준비가 되었을 때 온갖 종류의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설교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저는 C.S. 루이스의 인용구만 사용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C.S. 루이스는 제가 기독교인이 된 이후로, 그가 쓴 모든 것을 읽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 저자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 수 있는 두 권의 책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다른 한 사람은 George Whitfield 입니다. 저는 그의 설교를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제로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특정 주제에 대해서 그가 한 말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George Whitfield가 어떤 말이나 설교를 하게 될 것 인지를 알게 되겠죠. 왜냐하면 수천 번이나 그의 설교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제로 그의설교를 수천 번 읽었습니다. 작가의 설교나 책들을 듣고 읽으며, 나중에는 단순히 책이나 설교의 단어를 뛰어 넘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이것이 바로 두 명의 작가에게 일어난 일이며, 제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즉석에서 말할 때 C.S. 루이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왜? 그가 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Image)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 이런 이미지(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고 있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할 지 알고 있고, 그들의 아이디어와 생각이 내 마음 속 깊숙하게 들어와서 저절로 나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그런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약속과, 우리에 대한 그분의 부르심과 우리에 대한 그분의 격려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단지 말씀 뿐만이 아니라, 나를 향하신 그분의 마음이 우리의 깊숙한 곳에 있다면,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에게 본질적이고, 내재적이며, 자발적이고, 반사적이고, 본능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제서야 당신은 종의 마음을 훈련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 당신을 비판할 때 “예수님은 내 형제다”, “예수님은 내 친구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이런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의 끝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안다” 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이러한 생각들은 당신이 하는 모든 것들에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것들에요. 

이러한 마음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깊은 종류의 우주적이고 영적인 평화, 더 이상 감정적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일부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눈을 통해 당신 자신과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기도, 성경 공부, 예배, 묵상, 다른 기독교인들과 교제할 때, 그리고 이 모든 것들 것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때만 가능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마음은 내 안에 깊게 가라앉고, 또 가라앉아 복음이 풍성하게 거하기 까지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인간관계의 능력이 되고, 결혼의 능력, 서로 복종하는 능력, 진정으로 용서하는 능력, 상처주지 않고 비판하는 능력, 상처받지 않고 비판을 받는 능력이 됩니다 – 이는 오직 예수님을 믿을 때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예수님을 믿음으로서가 아니라, 그분에 대해 생각하고, 그분을 통해 생각하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그분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너무 굳어져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쉽습니다.

지적인 수준에서 생각할 순 있지만, 더 깊은 수준에서 그것을 거부하게 됩니다. 바로 16세의 여드름 투성인 아이들이 계속해서 우리 마음 속에서 예수님을 이겨버리는 것입니다. 제 말씀을 이해하시지요? 결혼의 힘은 성령이 만드시는 이타심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결혼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정의는 지난 주에 말씀드렸기 때문에 조금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혼의 본질은 언약, 즉 법적인 구속입니다.

지난 주 설교를 하고 난 뒤 누군가 제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이해를 못하겠네요. 그렇다면 결혼에서 불법은 무엇인가요? 결혼을 결혼 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회자(Minister) 입니까?” – 이 부분에 대해서 가톨릭과 기독교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독교의 의견이 옳다고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경우, “오직 사제만이 결혼을 시킬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데, 사제건 목회자이건 증인이건, 결혼은 그저 결혼일 뿐입니다. 이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인의 참석이 결혼을 시키는 것인 것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혼은 결혼입니다.

왜냐구요? 성경을 보십시오. 결혼은 원래 아담과 이브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을 결혼 되게 만드는 것은 교회의식이 아닙니다(가능하긴 하지만).

당신의 결혼을 결혼되게 만드는 것은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유대인 결혼식에서처럼 유리를 밟는 행위가 당신을 결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결혼을 결혼 되게 만드는 것은 반지가 아닙니다.

결혼을 결혼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삶과 삶의 모든 면을 함께 나누겠다는 영구적이고 독점적이고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약속입니다. 결혼은 영구적이며, 독점적이어야 합니다.

“결혼 3년 차라서 재계약을 할 때가 되었네요. 당신에겐 3년 더 결혼을 연장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은 결혼이 아닙니다. 기독교적 정의에 따르면, 혼전 합의조차도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정의에 어긋나는 부분입니다.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정의는 삶의 모든 부분을 다른 사람과 나누겠다는 영구적이고 배타적인 약속입니다. 당신의 삶과 삶의 모든 부분을 배우자와 공유하는 것은 공개적이고 법적인 약속, 영구적이며 독점적인, 공개적인 법적 약속이어야 합니다.

만일 결혼이 영구적이지 않고 3~4년의 기간 뿐이라면 그것은 결혼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부분이 아닌 일부 또는 일부분만을 나누는 것이라면 ‘혼전합의’ 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결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혼의 근본에 도달하십시오.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정의는 영구적이고 배타적이며 법적 구속력이 있고 영구적이며 배우자와 삶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는 배타적 약속입니다.

자, 목회자와 함께 인지, 증인과 함께 인지, 유리를 깨거나 반지를 교환하는 등의 결혼의식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무와 헌신, 책임과 규율을 중시하는 이 문화에서도 자기실현, 자아실현, 성장과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규율’과 ‘복종’과 ‘의무’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가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런 종류의 확신이 없고, 그런 약속을 할 의향이 없다면,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하고자 할 때 ‘영구적이고 배타적이며 공개적인 법적 약속’을 기꺼이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결혼할 만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상대방이 당신에게 기꺼이 그런 약속을 하고, 당신이 상대방에게 기꺼이 그러한 약속을 할 때만 자신을 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본 결혼의 정의입니다.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이 생각의 의미는 32절 – “이 비밀이 큽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 에 있습니다. 그것은 공개적인 약속이며 본질적으로 결혼의 사랑은 약속입니다.

누군가 제게 “당신은 결혼의 낭만을 다 죽이는 것 같은데요” 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뭐라고 했습니까? 사랑의 본질은 헌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행동이 먼저 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헌신(Invest) 하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겠다는 약속이며 감정은 두 번째로 느끼는 것입니다.

(Invest 단어를 직역하지 않고 문맥상 ‘헌신’이라고 번역했습니다_옮긴이)

목회자가 되어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 목회자가 되었을 때는 당신이 정말로 친구로 선택하지 않을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환자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해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목회자들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 외에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친구가 되기 쉽지 않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로 선택하는 직업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목사가 되는 것은 일종의 독특한 경험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선택적인지 알게 되면 놀랄 것입니다. 우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우리 자신을 헌신(Invest)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우리 자신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듣지 않고, 새벽 3시에 그들을 보러 가지도 않습니다.

제가 목회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흥미를 느꼈던 것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Kathy와 저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저는 목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약 100-150명의 사람들을 섬기며 목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내가 그 마을에서 그저 개인으로서 살았다면 결코 친구로 선택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싫어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과 공통점이 별로 없거나, 삶이 똑같지 않고, 관심사도 없고 인간적인 매력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당신이 작은 마을의 목회자라면, 교인 중 한 명에게 문제가 생기는 경우, 당신은 그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과 병원에 가야 합니다. 새벽 2시에 그 사람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아들이 집을 나간다면, 당신은 차를 타고 그 아들을 쫓아가야 합니다. 그 사람의 아내가 도망간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웃음)

그것이 작은 마을에서 목사가 되는 방식입니다. 작은 교회에서 당신 자신을 헌신(Invest)하고, 기부하고, 특별히 친화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저와 Kathy에게 큰 놀라움이 찾아왔습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쉬는 우리는 휴가를 가졌죠. 쉬는 날 그녀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더군요. – 당신 뭘 하고 싶어? –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며 쉬고 싶은 지 묻는 것이었죠. 그러자 저는 “음, John과 Mary를 만나러 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왜? 도대체 왜 그들을 보려고 하는거야? 내 말은, 그건 일이지 쉬는게 아니잖아, 그렇지 않아?” Kathy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John과 Mary가 가진 모든 문제들와 상황이 불쾌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할 필요가 없을 때, 도대체 왜 그들과 시간을 보내자고 한 것일까요? 알고보니, 저는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저는 그들을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저는 그들을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왜냐구요? 목회자로서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걸까요? 제가 목회자라서 더 거룩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더 경건하거나 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정말로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내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을 때에도 그들을 사랑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당신이 누군가를 좋아할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일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게 되면 결국 좋아하게 됩니다. 이것은 반대로도 작용합니다 – 처음에 나치(Nazi)는 유대인을 싫어했기 때문에 죽였다가, 나중에는 유대인을 죽였기 때문에 증오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렇듯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하기 때문에 사랑하게 됩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자신을 내어주고, 더 많이 헌신(Invest)하기로 결정할수록, 더 많은 마음이 그들에게 묶이게 됨을 알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의 마음도 있다’고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 GODpeople.com
  •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 당신이 누군가에게 헌신(Invest)하는 것은 당신의 보물을 그 사람에게 두는 것입니다.
  • 당신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 당신이 감정을 쏟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 당신은 그 사람에게 헌신(Invest)하고 또 헌신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당신을 짓밟고 매우 잔인하고 가혹하게 대한다면 여전히 적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보통, 당신이 볼 때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모호한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좋아하게 됩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헌신(Invest)할수록 그들이 당신에게 점점 더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누구와 결혼하든 감정은 식어져 버릴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 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구애 중이거나, 약혼할 때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나는 그 사람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감정은 식어버릴 것 입니다.

여러분, 감정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본질은 헌신의 서약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감정을 느끼고, 친밀해지더라도, 그러한 감정들은 결국 사라지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당신이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하지 않는다면, 결혼과 결혼을 전제로 한 관계들은 성공하지 못할 것 입니다.

상대방을 바라보며 마음이 메마르고, 특별한 감정이 없을 때 – 그 사람에게 헌신하고, 주고, 사랑하고, 다정하고, 아끼고, 경청하고, 섬김다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결국 이러한 시간을 극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계가 건조해지고, 감정이 메마를 때, “이 사람은 나를 위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낭만적인 결혼인가요? 아닙니다. 결혼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결정해야 하는 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어느 순간 감정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 순간부터 당신은 자기 자신을 헌신(Invest)하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헌신(Invest)하기로 결정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절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결혼의 정의와 본질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약속입니다. 평생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영구적이고 독점적인 것입니다.

셋째, 결혼의 우선순위.

이 주제는 사실 모든 주제 중에서 가장 짧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결혼의 우선순위입니다. 31절은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해 둘이 한 육체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결혼에 대해 가르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미국사회에서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비(非)서구권에서 왔다면, 당신의 부모님이 아시아 혹은 라틴 문화권 이라면, 아마 이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미국이나 서구 사회처럼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를 더 ‘덜’(less) 강조하는 사회는 없습니다. 세계의 거의 모든 곳과, 역사의 거의 모든 곳에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는 엄청나게 강력하고 이치에 맞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근본적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아주 깊게 당신을 형성하고 평생동안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보다 더 심오하고, 더 원초적이며, 더 근본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2장 20절과, 바로 여기, 5장 32절, 31절에서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해 둘이 한 육체가 될 것이다” 라는 강력한 방법을 제안하십니다.

이 글을 처음 읽었던 동양인, 동양권 독자들은 아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꼭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부모와 자식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남자와 여자를 동산에 두었습니다. 바로 남편과 아내였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혼 후에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바로 ‘결혼관계’ 라는 점입니다.

제일 중요한 사람은 배우자여야 합니다. 당신의 배우자 외에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더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 창의성과 감정을 투자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28절에 보면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건강이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의 기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건강보다 일을 우선시하기로 결정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충분히 먹고 잘 자는 것보다 이 일을 끝내고 돈을 벌고 경력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결국 일과 건강을 모두 잃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바울의 말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려고 합니다. 결혼은 소용돌이입니다. 결혼은 당신의 삶의 중심입니다. 당신이 결혼한 순간부터 결혼생활은 당신의 삶 전체를 결정짓는 힘을 가집니다.

제가 주례를 할 때 항상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결혼생활은 당신 삶의 중심입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약해져도 결혼 생활이 강하다면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주변의 모든 것이 강하지만,결혼 생활이 약하다면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세상 속에 나약해진 채로 던져 지게 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어요? 결혼생활은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그것은 삶의 소용돌이 입니다.

이점을 외면하게 된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바울과 하나님이 여기서 “사람이 부모를떠나야 한다”고 말한 것의 의미는, 당신의 결혼생활보다 다른 어떠한 것이 우선 시 된다면, 당신의 삶에 엄청난 불행과 아픔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자, 결혼생활보다 우선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여기에 언급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그것에 대해 잠시 후에 이야기하겠습니다. 당신의 배우자보다 경력을 우선시하면 어떻게 됩니까? 둘 다 잃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당신의 아이들입니다. 이것은 특히 오늘날 높은 이혼율의 원인이 되는 것 입니다. 결혼생활이 너무 나빠져서 부모와 자녀 관계도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 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주요 정서적, 개인적인 관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배우자보다 앞서고, 배우자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고, 자녀와의 사랑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면, 그것은 배우자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원칙이 아닙니다. 당신이 이 원칙을 깨뜨리면 당신 자신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쁘셔서 이것을 그냥 대충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잘못된 일이 생기게 됩니다. 아동 학대 연구에 따르면 – 많은 경우 자녀를 때리고 학대하는 사람들이 자녀를 미워하지 않기 때문에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너무 사랑해서 학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제일 많은 사랑을 쏟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이가 제대로 행동하지 않거나 – 다른 관계에서 얻어야 하는 것을 아이에게서 얻지 못한다면 미쳐가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성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랑을 줄 수 없을 것이고, 당신의 자녀가 배우자보다 더 중요해진다면, 당신의 삶은 엄청난 병리와 기능 장애, 그리고 모든 문제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경력이 당신의 배우자보다 우선이라면, 당신은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자녀가 배우자보다 앞서면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배우자보다 친구를 먼저 우선시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당신이 배우자보다 더 많이 시간을 보내거나, 배우자보다 당신을 더 잘 이해한다고 느끼는 친구가 있다면(그 친구의 성별을 떠나서), 당신은 이미 엄청난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결혼의 주된 목적은 우정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의 삶과 결혼관계에서 최고의 것이나 주된 것이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심오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아직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여러가지 모양으로든 아직까지 익숙한 관계들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완전히 파괴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도 그런 사람을 압니다. 결혼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 결혼 생활에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죠” 또는 “나는 여전히 감정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라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명백합니다.

결혼관계에서 배우자 중 한 명(또는 둘 다)이 여전히 부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걱정하고 있을 때, 부모가 이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 온갖 문제가 발생합니다. 알다시피,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충분히 어렵습니다. 셋이나 넷, 다섯이 된다면 해결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당신이 완전하고 정직하게 마음을 열어야 할 사람이, 당신이 방금 말한 것의 대부분의 것을 부모에게 말할 것 이라면 친밀함은 파괴됩니다. 더 이상 친밀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부모를 떠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감정적으로 부모를 떠나고, 그들과 항상 이야기하지 않고 재정적으로 의존하지 않더라도, 다른 종류의 의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옛 가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결혼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결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중 위대한 것 하나는 결혼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며

“이건 원래 이렇게 해왔어”, “이것이 내가 자라온 방식이야”, “우리집에선 남자들이 행동하는 방식은 이랬어”, “우리집에서는 그렇게 해왔어” 라고 말해선 안됩니다. “우리 집안에서 항상 하던 일이야”, “우리 집안에선 여자들이 하던 일 이었어”,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했었어”

이렇게 말하게 된다면 모든 종류의 문제를 겪을 것입니다. 꽤 미묘한 주제 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Kathy의 아버지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육아와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그녀의 어머니를 도와주었습니다. Kathy는 그녀의 어머니가 “이것이 너희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시는 방식이야. 아빠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나를 돕는단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자랐죠.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제 어머니에게 그런 종류의 집안일을 하도록 요청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더러워진 기저귀 속을 본 적도 없어요. 그는 기저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다큐멘터리나 그런 걸 본다면 아마 아셨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웃음)

알다시피, 저는 제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실제로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신적은 없지만 –저는 어머니가 이런 생각을 하시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밖에서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신단다. 그렇게 해서 이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시지.” 어머니는 일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네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집안일을 도우라고 하지 않는단다. 이런 것들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 두 사람, Cathy와 Tim이 결혼합니다. 첫 아이를 낳기 전 까지는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아이와 함께 앉아 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Kathy,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줘야 겠어요” 라고 말하자 Kathy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찾은 사람이 임자에요.” (Finders Keepers)

나는 이 말이 그녀의 가족들이 더러워진 기저귀를 발견할 때마다 사용했던 말 인줄 알고 있었어요. 저 말의 뜻은 “근데 왜 나를 보고 있어요? 당신의 아이 잖아요. 당신도 부모에요. 저는 여기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에요? 당신이 할 수 도 있잖아요. 그게 그렇게 큰일인가요?”

저에게는 큰일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제게 “당신이 좀 도와주면 안되나요?” 라고 했을 때 제가 들은 말은,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은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온 것 같지도 않구요. 당신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네요” 였습니다.

저는 제 가족의 기준으로 그녀의 말을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제 가족을 떠나지 않았던 거지요.

내가 기저귀 가는 것을 거절했던 것의 의미는 “이봐, 난 이걸 하고 싶지 않은데, 이건 내 일이 아니라구.이건 당신이 더 잘하는 거잖아.” 였지만 그녀가 들었던 것은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가족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고, 선택을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당신과 나에게 무엇이 옳은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지, 그녀의 가정에서 이렇게 하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 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면 새로운 아내, 새로운 남편, 새로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워하면 떠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그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남자가 말했어요, “내가 19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가 나를 교회에 데려가는 것이 싫었지만 매 주 강요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제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내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가지 않을 거에요.”

이 사람은 “교회가 진실일까? 내 아이들에게 좋은 곳일까?” 라고 장점을 생각하기 보다는 아버지에 의해서 통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어머니가 자신을 무자비하게 구타했기 때문에 자신은 아이들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말하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녀는 체벌을 통한 훈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대신 그녀의 어머니 때문에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또 누군가는 “나는 그녀가 내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그녀와 절대 결혼하지 않을거야”, “그는 내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그와는 결혼하지 않을테야” 라고 말합니다. 그게 왜 중요한가요? 그것은 오히려 조종당하는 것이 아닌가요?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해야 합니다. 결혼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결혼은 구원의 수단입니다. 결혼은 구원과 매우 흡사하다고 바울은 이야기 합니다. 결혼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결혼의 역동성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구원과 우리가 구속 받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구속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부모의 패턴에 대해서, 부모의 강요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심리적이고 심오하게 들린다는 것을 압니다. 굉장히 현대적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고대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의 지혜는 심리치료가 나오기 전부터 있었고 옛적부터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에게 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혼은 당신의 삶 전체에 대해, 당신의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변화시키는 힘이고 당신이 누구인지 보여줄 힘이며, 당신을 무너뜨리거나, 결국에는 당신을 세우는 힘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 부분입니다.

당신이 결혼했고, 이 설교를 들으며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거지?” 라고 겁을 먹고 있다면, 결혼은 당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결국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혼은 당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며, 행복하지 않다고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혼은 당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고안되었습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입니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본 죄의 깊이를 결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볼 위치에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결혼 생활에서 당신의 이기심을 취하셔서 당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신다는 것은 아이러니 합니다.

당신의 결점, 이기심, 편견, 선입견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당신의 결혼 생활과 문제들 속에서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왜? 이것은 단순히 이기적인 생존을 위한 감정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마침내 내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당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성령충만 하다면, 네가 진정 내게 온다면, 네가 진정 내 아들 예수를 구주로 영접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되지 않니?”

기독교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 중, 이 모든 역학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꽤 잘해올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마음에 일종의 벽을 두어 왔기 때문입니다.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 있어도 그들은 단지 “그 일이 없는 것처럼 지내자,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 거론할 필요가 없어.” 라며 서로 흥정했습니다.

결혼생활에는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령의 충만함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이 가능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무슨 소용이 있나요?” 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자, 만약 당신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일반적인 관계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결혼은 그 관계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살펴 보시고, 이러한 것들을 적용하세요. 먼저, 사랑은 행동입니다. 두 번째는 감정이죠?

사랑은 항상 성령이 주시는 이타심(unselfishness) 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관계를 연습해야 합니다. 당신의 인생이 결혼 생활을 대비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할 것이니 – 이것은 큰 신비입니다. 계속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구원을 더 많이 이해하고 우리의 구원을 이해할수록 결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죠?

다음 주에 계속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 우리에게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위대한 연합, 우리 모두가 결혼의 비밀에 의해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 중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결혼을 한 사람들도, 모두 결혼에 대해 온갖 두려움과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성경, 지금 보고 있는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빚어 주셔서,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곡된 이해 없이, 지혜롭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금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결혼으로 인해 드러나는 결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닥칠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이 말하는 원칙에 따라 관계를 재정비 할 수 있게 하소서.

아버지, 저희를 변화시켜 주시고 저희를 아버지의 아들처럼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이 모든 제도 중에서 가장 큰 제도인 결혼에 관해 이 말씀을 계속 공부하면서, 당신의 구원에 대해 더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과 결혼했고 당신의 가족이 된 것에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므로 우리를 점점 더 당신의 아들처럼 만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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