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_#4] 요한복음을 묵상하며 – 분명한 정체성이 주는 자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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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을 통해 요한복음을 묵상하고 있다. 공동체 순에서 나눴던 몇가지 묵상 내용들을 공유한다.  포스팅 용은 아니고 메신저 공유를 위해 작성한건데 일단 공유.

나눔말씀 : [요한복음 17장 6-19절]

나눔말씀에서 예수님은 함께하는 제자들을 위해 중보하십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제자들을 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때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을 섬길때 받는 핍박이라고 생각할수 있었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작고 연약한 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 아무도 돌보지 않는 한 사람을 섬길때 받는 모든 어려움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핍박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에서 가장 연약한 자와 함께 어울리고자 할 때 받는 조소와 냉대, 불공정한 처사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을 믿는다면, 이러한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말씀 : [요한복음 16장 1절 – 15절]

예수님이 떠나실 생각에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이 떠나시는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만큼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중요한것 임을 강조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환기시켜 주시며 주님에게 영광을 올려드린다.

내가 속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을 떠오르게 하시며 그 말씀과 가르침을 살아낼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요한복음을 통해 계속 묵상하고 있는 ‘내’가 ‘하나님’안에서 누구인지 아는것 – 나의 정체성을 아는것 – 이 성령님께서 내가 늘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아는 것임을 묵상한다.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바리새인들은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해 증언하니 그 증언은 진실하지 못하다” 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8장 12절, 13절)

이런 바리새인들의 반론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놀랍다.

8:14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비록 내가 나를 증거한다 해도 내 증거는 참되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또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8:15 너희는 사람의 기준대로 판단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
8:16 그러나 내가 판단한다 해도 내가 내린 판단은 옳다. 그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8: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이 증거하면 참되다’고 기록돼 있다.
8:18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증인이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 또한 나를 증거하신다.”

내가 받아들인 의미는 이렇다 –  “너희들, 내가 나에 대해 하는 말이 진실되지 못하다고 했지? 그렇지 않아. 왜냐면 나는 내가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어. 그리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도 나를 알고 계시기 때문이야”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당당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가장 무례한 말과 행동은 상대방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너 왜 그렇게 웃어?”, “너 왜 그렇게 인사해?”, “너 왜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과 생각들에 대해 힐난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 이것이 사실 상대방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 지적이나 조언을 주는 경우는 예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국 –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 –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지으신 분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것만큼 자유하는게 있을까? 이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뜻 아닐까? 라고 즐겁게 묵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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